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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20121014

 

소쇄원

 

꿈을 꾼다. 너무나 현실과 같아서 스스로 꿈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꿈을
(나는 대부분의 경우 꿈을 꿈이라 인지하곤 한다).

현실을 꾼다. 너무나 꿈과 같아서 스스로 현실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을.

'실존하지 않는 어느 장소에 갑자기 떨어진 기분' 소쇄원에 들어서며 느낀 첫인상.

2년전 한참 무겁던 마음을 안고서 비포장길을 달려 도착했던 병산서원에서 느꼈던

첫인상과 아주 많이 유사한 느낌,

(다만 병산서원은 찾아가는 과정이 조금은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보탬이 된다면

소쇄원은 오롯이 스스로 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다르달까.)

 


어느 하나 사람의 손이 거치치 않은 부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인위적이란

생각을 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운 건물들. 물건들.(왁자지껄한 사람들만 뺀다면)
한참의 시간을 들여 바라보아도 오래된 기와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초록색의 이끼들과

그 위를 비치는 햇살을 보며 인위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이것은 이미 인위가 아닌 것이다.

 

 


내가 소쇄원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건 분명이 이른 새벽시간 일것이다.
간단한 산문집이나 시집을 하나 들고 광풍각 마루에 걸터앉아 사람들이 몰려들기 전의

시간을 온전하게 내것으로 만드는. 그런 현실을 다시금 꿀 것이다.

현실을 꾸는 곳. 소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