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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20121118

여행은 언제나 우연을 동반하고

그 우연이 삶의 방식과 생각의 방식을 송투리째 비틀어 버리기도 한다.

 

오늘 마주한 아주 짧은 여행에 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한그릇의 짬뽕에서 시작한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 자주 한적한 중화요리집을 찾아 짬뽕을 시켜먹곤 한다.

짬뽕보다는 짜장을 좋아하지만 여행중에는 짬뽕을 먹는 버릇이 생겨벼린것이다. 이유없이.

 

텅 비어있는 오후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가까운 군위로 짧은 여행을 떠났고 오늘도 변함없이 

한적안 중화요리집을 착아 우보면으로 차를 몰았다. '역시나 중화요리집은 어디에나 있구나'

첫 방문임에도 마치 단골집 같은 편안함을 주는것이 중화요리의 매력...

 

'총각 키가 190이 넘겠네??'

가게에 들어서며 인사말을 건내기도 전에 홀로 가게를 지키던 사장님의 입에서

친근하게도 튀어나오는 인사치레... '여기도 맘편하게 한끼 먹기엔 좋겠구나.'싶다.

 

'사장님은 어찌 그걸 한눈에 압니꺼?? 190십 조금 넘는데...' 웃으며 대꾸를 하고 가게를

돌아보는데 뭔가 심상치가 않다.

 

 

'다녀간 사람들의 방명록인가' 혼자 고민을 하던차에

'내 일기야 일기...' 중년을 넘긴듯 보이는 여사장님의 입에서 기다렸다는듯 설명이 날아왔다.

'아...' 일기라는 단어에 실린 뭔지모를 무게감...

 

 

규칙없이 나열된 단어들과 그만큼이나 규칙없이 붙어있는 연습장 위의 시간들이 신기하게도

꽤나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하루의 매출, 손주들의 성장, 자녀들의 연락, 날씨, 감정들이

하루도 빠집없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아..아직 주문을 안했구나' 하는 생각에 짬뽕을 하나 주문했다.

이미 음식따위 중요하지 않은것이 되었지만....

 

 

 

 

 

잠깐 자리에 앉아서 가게를 또 둘러본다. 깔끔함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너저분한 공간...

연탄난로 위에 주전자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분위기. 좋다...좋다...

 

 

'오늘은 군위를 나가려고 했는데 역시 돈을 벌어야지...다 그런거지 뭐...' 웃음섞인 불평을

털어내며 사장님의 손에 들려나온 물컵에는 따듯한 대추차...

 

'아 정말 환장하게 좋다...'

 

 

'방에도 있고, 주방에도 있어' 적적한 오후에 홀로 찾아온 총각손님에 신이나셨는지

한번 둘러보라고 성화인 사장님의 손에 이끌려 감히 중국집의 주방에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방송국에서도 몇번 왔다갔는데, 아들이 자꾸 말리네...혼자사는 엄마 걱정된다고'

방송국의 입장도 아들의 입장도 모두가 이해가 된다는 생각을 잠깐하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외국인 손님이 와서 적어둔 메모도 있지...'

 

 

 

 

 

 

오후 3시... 홀로 찾아온 손님의 위해 면을 만들고 불을 지피고 고기를 썰고 음식을 만들고

홀로 찾아온 손님은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쉴틈없이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끌어가며 사진을

찍는다.

 

 

 

 

짬뽕의 맛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어머니의 아침상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것 처럼

 

(짬뽕을 먹는 도중에 마을어르신들 소주를 찾으며 들어오셨고

사장님은 어르신들과 하하호호 웃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갔다.)

 

4500원에 짬뽕과 대추차와 커피를 대접받았고

누군가의 인생이 오롯이 머문 공간을 알게 되었으며

다시금 삶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또 하나의 좋아하는 장소가 늘어났다.

 

...

 

 

 

 

사소한 끼니의 짬뽕에서 시작한 짧은 여행은 예상치도 못하게도

누군가의 기나긴 인생의 여정을 오롯이 들여다보며 마무리가 되었다.

오늘자 일기에 홀로 찾아온 키가 크던 총각의 이야기가

저 벽면에 적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하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