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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

사진에 대한 조금은 고리타분한 이야기

 


사진에 대한 조금은 고리타분한 이야기




들어가기에 앞서서


 

  책상 위에 조촐하게 모인 카메라들




 저는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글쟁이는 더더욱 아닙니다.
그러기에 완벽한 사진도 찍지 못하며, 완벽한 글 또한 적지 못합니다.

본 게시물은 리뷰&스터디 란에 게시되지만 어떠한 장비에 대한 사용법이나 그 사양에 대한 상세한 언급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기계적인 성능이나 사용법 등은 카메라의 구입에 필요한 정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런 정보들을 나열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저 제가 그동안 생각해온 사진에 대한 사소한 상념들을 흩뿌려 놓은 낙서장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보잘 것 없는 글에
더 가까울 꺼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글입니다.





고은사진 미술관에서

한가한 혼자만의 시간




스크롤을 주르륵 내리며 사진만 보고 지나가셔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커피를 한잔 준비하시고 부족하게나마 적어 내려간

사소한 상념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셔도 됩니다.

사진쟁이도, 글쟁이도 아니지만 지금부터 부끄러운 사진을 비틀거리는 글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1.SCENE#


오후의 햇살의 따스함을 바라보는 시선
때로 그런 시선은 특권이 된다. 
2007 무궁화호





  서산으로 기울어진 햇살이 퍼지는 버스 뒷자석에 앉아서 책을 읽다 문득 창밖을 바라봅니다.

빨간불에 서있는 자동차들, 각자의 운전석에 앉아서 연신 하품을 하고 있는 사람들,

 내비게이션의 화면에선 매 순간순간 무수한 정보들이 초를 다투며 쏟아지지만

무겁디무거운 하품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선이 향하는 곳곳에 무미건조한 표정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움직임에 분주한 듯 하지만 그 분잡함 속에는 여지없이 지루함이 물들어 있습니다.

그 지루함들 사이로 버스 안에 퍼지는 햇살보다 밝은 아이의 웃음소리.

순간 아이를 찾는 시선이 바빠집니다.

 한참을 떨어진 버스 앞쪽의 의자에서 엄마의 무릎에 앉은 아이가 함박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햇살보다 밝은 그 아이의 함박웃음을 조용히 머릿속에 담아둡니다.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아이의 웃음,

문득 아깝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이내 행복하다는 생각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세상 그 어느 아이의 몸짓도 

특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07 부산



6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시간 동안 사진이 취미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다녔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사진이 취미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피사체를 찾고 셔터를 눌러대던 물리적인 행위에 집중하던 그것은 사진이 아니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조금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지나온 지금,

이제야 부끄럽지만 사진을 취미로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녁 무렵 그 버스 안에 퍼지던 아이의 함박웃음,

그 웃음소리와 아이의 해맑은 표정은 그 자체만으로 너무나도 아름다웠습니다.



그 시간 버스에 퍼지던 햇살은 가방에 들어있는 책을 꺼내서 읽기에는 충분히 따스하고 밝았지만,

책과 함께 들어있는 카메라를 꺼내서 셔터를 누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고감도의 필름이 들어있었다면 혹은 고화소가 지원되는 디지털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면

충분히 담을 수 있을 장면이었지만,

그것들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그 아이의 웃음과 그 행복함이 넘치던 시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기에 다행입니다.

이렇게 한계가 주는 포기 아닌 포기 안에서 만족감을 찾아가는 일이 조금씩 늘어납니다.

조금씩 시선 이라는 조금은 다른 이름의 사진이 생활 속에 스며듭니다.



2.디지털과 아날로그 그리고 필름

필름은 이미지의 저장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님이 분명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전적인 의미로는 그저 방식의 차이 일뿐

우리에 생활에 많은 변화를 줄 겉 같은 단어들은 아니지만

 이 두 단어들은 삽시간에 우리들의 생활방식을 송두리체 변화시키고 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명절이면 외가로 내려가는 아버지의 르망 운전석 뒷주머니에는

언제나 대한민국의 모든 도로를 표시하는 커다란 지도책이 꽂혀있었습니다.

뒷자리에 않아서 외가도 찾아보고, 우리마을도 찾아보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팔던 고속도로휴개소도 찾아보곤 했었습니다.

너덜너덜해진 지도책에는 하나 둘씩 태이프가 늘어가고 태이프가 늘어가는 만큼

아버지와 저의 대화는 많아지곤 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재미있고 의미있는 일이였단 생각이 듭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지도책은 사라지고 그 대신에 운전석에서

내비게이션이라는 놈이 친절하게도 여기저기 길을 설명을 해주기 시작 했습니다.

 티비도 보여주고, 라디오도 들려주고, 심지어는 가보지 않은 맛집도 찾아줍니다.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는 내비게이션으로 티비를 보고

뒤에 앉은 아들녀석은 니텐도의 버튼을 연신 눌러대는 모습은 더 이상 특별한 장면이 아닌 일상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어느덧 우리는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추억을 잠식당해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연신 지루하다 하품을 하면서도 멍하니 바보상자를 바라보기 일쑤고,

‘이 노래 참 좋네’ 하면서도

그 가수가 누구인지 누가 만든 노래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지나가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이 떠나버린 놀이터는 


더 이상 '동사' 가 되지 못한다.


2008 부산 




  디지털의 홍수는 당연하다는 듯 사진이라는 영역도 집어삼켰습니다.

사진을 찍고 결과물을 확인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빠르다는 ‘눈 깜짝할 새’도 걸리지 않습니다.

 수많은 디지털카메라들이 출시되고 있으며,

이미 이미지의 디테일도 디지털촬영소자가 필름을 앞서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왜 필름을 고집하게 되는 걸까요??

솔직히 그 답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편리함에 반해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 하다가도 어느덧 필름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거다’하는 답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필름을 넣고 빼는 과정이 좋아서’, ‘혹은 필름 로딩의 느낌이 좋아서’, ‘색이나 느낌이 필름이 더 좋아’

라는 답변은 그 이유를 설명하기엔 전혀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자료들로는 성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친구녀석의 어린시절을 담아 주었을 카메라는 


장농 속에 굴러다니는 깡통으로 전락하였고 


자연스럽게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어쩌면 엠피쓰리플레이어에 꽉꽉 들어 차 있는 수많은 가수들의 명곡들이

어린시절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던 미용실에서 일주일간 심부름을 하고 받은 용돈으로

한걸음에 달려가서 사왔던,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던 신승훈의 앨범이 가지고 있던 추억을 대체하지 못하듯,

내비게이션과 니텐도가 아버이와 아들이 금강휴개소에서 강을 내려다보며 먹었던 아이스크림이

유독 맛있었다는 그들의 대화를 대신하지 못하듯

디지털의 홍수 속에서 아날로그의 향수를 채우는 수단의 일부가 아닐까요?
'어떻노?? 간지좀 나나??'

담배를 한번도 피워 본 적 없는 놈


그리고 골초


2008 학교 







여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유난히도 여자복이 많은 녀석


2007 창녕


우사를 두번이나 탈출한


뿔난 송아지


2007봉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디지털은 우리에게 명사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기 힘들지만

아날로그는 우리에게 명사뿐 아니라 동사로서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하구요.

 지도에서 목적지를 찾고,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며 가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행동 없이 결과가 나오지 않는,

 자신의 노력이 결부 되어있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노력’이라는 동사로서의 ‘아날로그’

혹은,

버스에 타고 있던 무미건조한 사람들,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따스하게 번지던 햇살도 그저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배경으로서 지나치고

그 햇살보다 밝던 아이의 웃음소리를 그저 하나의 소음으로 지나쳐 버리는,

어느새 디지털화 되어버린 사람들 속에서

‘탈출’이라는 동사로서의 ‘아날로그’...
아이는 가장 아름다운 '동사' 이다.

 2007 부산





그리고 '노력과 탈출' 이라는 단어로 진부해버린 아날로그의 연장선 상에 필름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부함... 그것은 큰 매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언젠가 진부함이 되어버릴 추억을 이미 진부해 버린 필름 위에 그려넣는 일 

어찌보면 참으로 잘 어울린단 생각이 스처갑니다. 


3.카메라 그리고 F3hp

녀석은 '담담하다'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 녀석이 어디가 그렇게 이쁘고 좋은 건지는...

기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대체가 가능한 녀석들은 충분히 많이 있습니다.

디자인이 이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제 기준에서는 조금 투박합니다.


최고의 순간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함께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어쩌면 어린시절 책상에 줄을 그어가며 싸워대던 짝꿍을

그래도 다른 녀석들 보다 조금 더 챙기던 이유가 이뻐서는 아니였음과

비슷한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습관들,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더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사용하게 되는 수많은 물건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별다른 생각 없이 사용을 하다 보니


조금 무겁게 느껴지던 바디도

이제는 당연한 무게감이 되었고
조금 불안하던 그립감도

이제는 다른 바디의 그것이 어색합니다.
눈에서 카메라를 때지 않고서도

와인딩이 자연스러워졌고

심도 미리보기와 노출고정이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녀석이 많이 이쁘게 보이는건 아니지만

이러한 이유도 다른 녀석들이 불편해졌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카메라’라는 단어에 이 녀석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머리도 찍히고 보이지 않던 황동도 많이 들어났고 파인더에 먼지도 많이 늘어나서

보내기 미안한 녀석이 되었을 뿐입니다.



고향은 언제나 편안하고 아름다움으로 기억됩니다.
아무리 멀고 아무리 번거러워도 마음마저 고향을 떠나기는 쉽지 않은 이유가 
객관적으로 설명되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향같은 카메라가 F3 입니다.

2007 고향 봉화에서



 생각 없이 사용을 해도 불만을 사지 않는 카메라...

적어두고 보니 더 이상의 칭찬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적당한 무게감은 셔터가 눌리는 순간에 적당한 안정감을 선사합니다.


작게 돌출된 고무그립부분은 엄지와 검지를 제외한 손가락들에 적당한 파지감을 선사합니다.

꽤나 큰 손을 가지고 있는 저도 이제는 상당한 안정감을 느끼니까요.


파인더에 접안을 한 상태로 다중노출 레버를 제외한 모든 조작부의 운용이 가능합니다.
(다중노출레버도 자주 사용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할꺼라 생각이 됩니다.)


머리가 찌그러지는 여러번의 충격에도 그 기계적 성능에는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배터리 전원부의 접촉이상은 발생하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용서가 가능합니다.

이 녀석 저와 같이 84년도에 태어난 녀석이니까요.^^
(시리얼넘버 추정으로 84년 전후에 생산된 녀석으로 알고 있습니다.)







친구 라는 단어를 수식하는 다른 단어는 필요가 없다.

2009 마산

적다보니 이쁘지도 않은 녀석 자랑을 한참이나 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이쁘지 않은 녀석이라지만 고맙다는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필름을 사용하고 처음만난 이녀석 덕에 사진을 포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버스 안에서 웃음짓던 아이의 모습과 그 순간의 아름다움,

그리고 행복을 느끼게 해준 고마운 녀석이 바로 이 녀석입니다.

기계적으로 조금 더 뛰어난 바디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떤식으로든 또 셔터를 누르는 행위에 집중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수 많은 상황들 속에서

이녀석은 그저 담담히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가방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조금씩 다른 물건들에게 내어주면서도

 담담하게 자기의 역할은 과분하게 해내었고


저에게 조금 더 즐거운 사진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한때는 이렇게 깔끔한 모습도 있었지...


녀석을 한쪽 어께에 둘러매고 거리로 나섭니다.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어느덧 어께에 카메라의 중량감이 사라질 때 쯔음 찍고 싶은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럼 그냥 조용히 들어올려 셔터를 한번 누르고는 이내 다시 존재감이 사라집니다.

사진을 위한 걸음이 어느 순간부터 걸음속에 작은 부분의 사진으로 바뀌었습니다.

사진을 위한 여행이 여행을 위한 작은 부분의 사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저는 제가 원하는 사진을 얻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 왔고,

녀석은 자신이 있어야할 순간에 그냥 그곳에 있을 뿐입니다.


사진이 촬영의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시선 그것만으로도 멋진 사진이 될 수 있음을 담담하게 이야기 하면서 말입니다.



어느 한쪽이 순수하다면
친해짐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07 무궁화호









어머니는 떙볕 아래에서 언덕넘어를 뚜러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병아리색 자동차가 나타나자
얼굴엔 형용할 수 없이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꼬불꼬불 언덕길을
슬리퍼를 신고, 아이를 등에 엎고 올라간는 어머니의 등
그리고 햇살
2007 부산





게임방? 볼링장?
일단은 밥부터 먹자...
2007 학교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사진
좋아하는 그 무엇이 생긴다는것...
2007 다대포
4.사진 혹은 시선의 확장
느즈막한 가을의 낙엽이 잔잔한 연못 위로 떨어집니다.

공기와도 같은 그 존제감에도 연못에는 작은 파문이 일어납니다.

조금씩 조금씩 연못에 젖어가던 낙엽이 물을 듬뿍 머금고 연못과 하나가 됩니다.
무미건조하고 차갑던 제 생활 속에 존재감 없이 다가온 사진이란 단어는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이제 조금씩 하나가 되기 위해 젖어가고 있습니다.

그 파문은 제 생활 여기 저기에 작은 변화들을 일으키며 작은 파문을 만들고 다시금 돌아와 사진을 적십니다.


사진을 시작하고 많은 것이 조금씩 변하였습니다.

 좋아하는 음악도, 즐겨보던 영화도, 책도, 생활에 동반되는 모든 행위들의 방식을 조금씩 바꿔두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그 시선 뿐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사고하고 판단하는 방식이르는

마음의 시선에 이르는 모든것을 조금씩 바꾸어버렸습니다.

사진으로 시작된 바라보는 행위가 시선으로 확장되었고 사진은 그 시선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 시선은 다시금 조금씩 확장하여 생활속에 스며들었습니다.


버스 안에 퍼지던 햇살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여유로서 스며들었고, 아이의 웃음에 같이 웃을 수 있는

기쁨으로 스며들었으며, 언제든 아이의 웃음을 기억 할 수 있는 행복으로 스며들었습니다.







5. 구차한 변명...





지금까지의 비틀거리며 적어내려온 글 들이 어쩌면 구차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제가 즐기는 사진행위를 조금이라도 좋게 보리려고 포장한 변명들 말이지요...



언젠가부터

사진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사진은 저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취미로 즐기기 위해 시작한 사진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상황을

저는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그것을 피할 방법으로 선택한 방법이 '필름'이라는 도구였습니다.
그리곤 다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풍경을 찍으러 멀리 찾아가는 일
정해진 피사체를 찾아 발품파는 일
정말로 내 사진은 지금 즐거운가??
답은 '아니다' 였습니다. 
즐기기 위해서는 정말로 즐거운 일을 해야 합니다.

잠시 그것을 망각하고 있던 자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즐거운 일을 찾기 위한 걸음이였고, 그 걸음에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걸음이라는 진부한 행위에서...

필름이란 진부한 물건에서...

스처지나갈 평범한 장면들을 찍는 사진에서...


그리고 지금은 즐거운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즐길거리들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구차한 변명은...

'나는 사진을 즐긴다'라고 스스로를 압박하는 변명이였단 생각이 듭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사진의 다가 아님을 조금은 날게 된 지금

이제 변명이 아닌

진심으로

'나는 사진을 즐기고 있다' 말 할 수 있을꺼 같습니다.
 ...
-END-